등산 용품판매점에서 매출4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 블랙야크 강태선 사장 > 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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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기업단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협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을 “목표로 하는 기회를 구체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정신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 뿐만 아니라 개인과 조직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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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용품판매점에서 매출4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 블랙야크 강태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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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1-25 18:33 조회1,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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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던 소년 히말라야로 가다

산이 좋아 밤과 낮이면 숲으로 향하던 소년이 있다. 한라산 깊은 숲에서 잠을 자며 사라진 소와 말을 찾아다니던 소년은 30여 년 후 히말라야로 향한다. 산이 좋아 만들기 시작한 등산장비 사업이 활로를 잃어서다. 히말라야를 오르던 그의 눈은 산 정상을 향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멈춘 곳은 등반 장비를 지고 가던 검은 야크였다. 순간 야크의 검은 털이 히말라야의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블랙야크’라는 브랜드를 탄생시킨다.


1995년 탄생한 첫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를 만든 강태선 회장의 이야기다. 현재 블랙야크는 유럽 12개국과 미국, 캐나다, 아시아 등 22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나우, 마모트, 마운티아 등 세 개의 별도 브랜드도 갖고 있다. 현재의 블랙야크는 강태선 회장의 삶의 궤적과 일치한다. 블랙야크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1971년 청년 강태선은 서울로 올라왔다. 집안 형편상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서울 남대문 시장 이모네 옷 도매상에서 장사하는 법을 배웠다. 워낙 산을 좋아했던 그는 틈틈이 시장을 돌며 각종 등산장비를 구경하고는 했다. 그러다 산에 들고 다닐 배낭을 하나 만들게 됐다. 군 배낭을 하나 구해 수선집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변형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리폼이다. 그렇게 만든 배낭을 메고 산행을 하자 어디서 샀는지 물어오거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등산용품을 만들어 팔면 잘 되겠다는 생각에 이모님의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1973년 24살 때다. 이때 탄생한 ‘동진산악’은 이후 ‘동신레저’를 거쳐 블랙야크가 된다.


45년 굴곡 끝에 세계적 기업된 블랙야크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사업 자금을 완전히 날려버리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산악인 고(故) 고상돈씨가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고 돌아와 대학에 산악부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배낭•침낭처럼 생기기만 하면 모두 팔려 나갔다. 강 회장은 국내 최초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를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군용만 있던 코펠을 일본에서 사와 똑같이 만들어서 팔았다. ‘자이언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배낭 브랜드는 ‘프로자이언트’라는 이름의 침낭, 신발 등 등산 용품을 취급하는 브랜드로 발전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 1992년 산에서 야영과 취사가 금지되면서 코펠, 텐트 등 등산용품의 매출이 급락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아웃도어 시장은 등산복이 주류를 차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제품은 등산용품이었다. 업체들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동진레저도 위기를 겪었다. 강 회장이 히말라야로 향한 건 이때다. 블랙야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심볼도 블랙야크의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블랙야크가 척박한 자연 속에서 등반의 동반자가 된다는 사실을 반영해 브랜드의 이념으로 삼았다. 등산인들을 돕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등산 용품만으로는 부족했다. 주력 아이템이었던 등산 용품에서 등산복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평상복과 달리 화려한 단색 일색의 등산복을 탈피하기 위해 블랙 색상의 옷과 세련된 디자인을 위해 노력했다. 소재는 고어텍스 등 고급 소재를 활용해 품질을 높였다.


시장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한 강 회장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블랙야크의 질주가 시작됐다. 국내 매출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아웃도어 종주국 유럽의 세계 최대 아웃도어 박람회인 ‘이스포(ISPO)’에 처음 참가했을 때는 변방인 한국의 작은 업체를 상대해주지도 않았다. 어렵사리 참가한 첫해에 그들이 내준 부스는 주요 업체와 거리가 한참 떨어진 후미진 곳이었다. 하지만 2년 만인 2014년부터는 프리미엄 브랜드만 입성하는 ‘비전홀’에 부스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블랙야크는 ISPO에서 4년 연속 수상하며 총 19개 상을 거머쥐었다. 지난 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SPO에서는 ‘모디카나 재킷’ 등으로 3관왕을 차지했고 지난해 3개, 재작년에는 11개 상을 수상했다. ISPO 참가 업체 가운데 단일 브랜드로는 가장 상을 많이 받았다.


지난해에는 북미 최대 규모 아웃도어 박람회 ‘OR쇼(Outdoor Retail Show)’에서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열고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 ‘그립인터내셔널’의 골프웨어 브랜드 ‘힐크릭’을 국내에 선보여 골프웨어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이다.


강태선나눔재단 통한 꾸준한 사회 공헌 실현

강 회장은 산이 좋아 사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블랙야크를 통해 등산인과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꿈꾼다. 블랙야크가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자신 역시 사회 공헌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나누려는 것이다. 현재 강 회장은 사회복지법인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을 운영 중이다. 재단 활동으로 대표적인 것은 네팔 대지진 피해지역 지원이다. 지난 2015년 4월 강진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네팔에 4억 원 가량의 용품과 구호성금 등을 전달하고 쓰러진 마을과 학교를 재건했다. 950여 명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가장 큰 규모의 학교였던 ‘스리빈두 케서르 세컨더리하이어스쿨’은 지진 후 임시 천막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재건사업을 통해 학교는 12개 교실을 갖춘 2층 건물의 ‘히말라야 블랙야크 스쿨’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외에 2012년에는 농어촌 폐교를 활용한 소규모 캠핑장 조성프로젝트, 2014년에는 ‘야크효프로젝트’를 통한 독거노인 지원, 필리핀 하이옌 태풍피해지역에 10억 원 상당의 물품 기부,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스폰서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태기 위한 사업들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16에는 ‘소비자 맞춤형 현장 생산 시스템’을 통해 기존에 사용하던 유해한 발수제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발수제 바지’를 출시했다. 작년에는 ‘블랙야크황사쉴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구부치 사막 일원에서 황사유입 방지를 위한 나무심기로 녹색장벽을 쌓았다. 지난 3월 26일에는 환경보호 공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청년나눔셰르파 Y.A.K.(You. Are. Keepers) 프로젝트’ 발대식을 가졌다.


강 회장은 친환경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산이 없어지면 산에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전히 강 회장의 산에 대한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확장해 다양한 사람들에게로 뻗어나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파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100억원의 기금마련을 목표로 한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의 성공과 블랙야크의 지속적 성장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데일리뉴스, 2018.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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