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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기업단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협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을 “목표로 하는 기회를 구체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정신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 뿐만 아니라 개인과 조직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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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길이 없으면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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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1-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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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 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나 대학교수, 사업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이하 호칭 생략) 1981년 광화문에 교보문고 개점을 결정할 때 임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금싸라기 땅에다 서점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던 임직원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대산 신용호는 평생을 교육과 보험을 위해 힘썼다. 그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했고 생명보험 외길을 걸었다. <인사이트 코리아>가 그의 일생을 짚어봤다.

올해는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탄생 100주년이다. 그는 1917 8 11일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송도리에서 신예범·유매순 부부의 6형제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집안을 이끌며 고생을 많이 했다. 그 탓에 집에는 늘 일제 형사들이 드나들었다.

신용호의 아버지 신예범은 영암 지역에서 처음으로 단발을 하고 신학문을 익힌 선각자이기도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야학을 열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호남 지방을 돌며 일본인 지주들에게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그는 이로 인해 두 차례나 감옥에 갇혔으며 풀려난 후에도 일제의 감시에 시달리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청년 신용호 ‘천일 독서’로 세상을 배우다
어릴 적 신용호는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폐병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월출산 정기가 너를 죽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는 어머니의 강한 의지로 질경이풀을 달인 물을 먹으며 살아났다. 신용호는 보통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책을 통한 독학으로 실력을 연마했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천일 독서’를 목표로 각종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 신용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헬렌 켈러> <카네기 전기>였다. 특히 <헬렌 켈러>는 신용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사업가로 성공한 신용호는 “사흘만 시력이 주어졌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유용하게 쓰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카네기 전기>를 읽으면서는 취직보다는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용호는 애초부터 취직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장사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일단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간 뒤 기회를 봐 중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아버지 신예범에게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신예범은 경성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 유매순의 반대는 더 강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야단쳤다. 그러나 신용호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당에서 어머니가 있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린 신용호는 목포역으로 가 경성행 야간열차를 탔다. 가출이었다. 1936 3월이었다. 경성을 거쳐 중국으로 간 신용호는 1940 24세 때 베이징의 자금성 동쪽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사를 세웠다. 곡물 유통업을 하는 이 회사의 이름은 ‘북일공사’였다. 간판을 내건 지 2년 만에 직원이 100명을 넘어서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용호는 장사를 통해 번 돈을 우리가 잘 아는 작가 이육사에게 틈틈이 보내는 등 그를 후원했다. 그가 빼앗긴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들다
신용호는 해방된 고국에 돌아와 ‘민주문화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이때 신용호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경구는 1981년 교보문고를 열면서 서점 입구에 큰 글씨로 새겨진다. ‘민주문화사’는 1946년 말 펴낸 <여운형 선생 투쟁사> 18쇄를 찍는 등 히트를 쳤다. 그러나 불합리한 서적 유통 구조를 접한 신용호는 사업을 접었다. 이어 ‘군산직물’ ‘한양직물’ ‘동아염직’ 등을 잇달아 창업했으나 6·25를 만나 좌초했다.

광복 이후 벌인 사업에서 신용호는 실패를 거듭했다. “오늘 이 개업식을 초라하다고 서글퍼 하지 맙시다. 선진국에서도 보험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 보통 50년이 걸립니다. 본인은 그 절반인 25년 이내에 우리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사옥을 짓겠습니다.”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 개업식에서 신 회장은 이렇게 약속했다. 창립과 동시에 출시한 ‘진학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보험상품이었다.

국민들에게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약 300만 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이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교보생명은 교육보험의 선풍적인 인기로 1967년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0년 대산은 종로1 1번지에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교보빌딩을 세웠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개업 당시의 약속을 3년 앞당긴 것이다.

신용호는 교보생명 창립 이후 보험업계 ‘최초’ 기록들을 연이어 써왔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을 선도했고,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으로 본격적인 보장성보험 시대의 막을 열기도 했다. 업계 최초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 100% 적립, 계약자 이익배당 실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교보생명은 한국 보험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아이에게도 존댓말 써라”, 경영지침 5가지
신용호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두 가지는 교육보험과 교보문고다.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지하 1층에는 우리나라 대표 지식문화기업 ‘교보문고’가 자리 잡고 있다.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하고 4000만 권의 도서가 판매되는 ‘국민책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은 당시 개발도상국에 진입하려면 국민 모두가 어느 정도 지적 축적이 있어야 하고, 독서량을 늘려 스스로 학습하는 평생교육이 정착돼야 한다고 여겼다.

‘독서입국(讀書入國)’의 원대한 꿈은 서점을 통해 구체화된다. 19816월 광화문 네거리에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다. 서가 길이는 무려 24.7㎞에 달했다. 교보문고는 개장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명소가 됐다.

개점 후에도 신용호는 틈만 나면 교보문고를 돌아보며 기뻐했다. 그는 다섯 가지 지침을 정해 매장 직원들에게 알리고 이를 실천하도록 했다. 다섯 가지 지침은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쓸 것 ▲한 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 책을 훔쳐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여기에는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큰 그릇이 되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신용호의 소망이 담겨 있다. 5대 지침은 지금도 교보문고의 운영방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보문고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는 신용호의 독서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 최고의 중심지에 있는 사옥을 놓고 기업 홍보 또는 광고를 위한 간판을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신용호는 “광화문사거리가 유동인구가 많고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니, 시민들에게 좋은 글귀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인지 교보문고는 현재 전국 24개 매장을 운영하는 등 종이책 유통 1위 회사를 뛰어넘어 온라인과 디지털콘텐츠 시장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지식문화기업으로 성장했다(인사이트코리아, 2017.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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