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ODM 명가' 시몬느 박은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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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03 06:5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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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가 멈추면 글로벌 명품 핸드백 명맥이 끊깁니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의 첫마디는 글로벌 핸드백 시장에서 시몬느의 위상을 압축해 보여줬다.
핸드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시몬느는 기라성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생산을 도맡다시피 한다. ‘명품백업계의 TSMC’로 불리는 이유다. 럭셔리 핸드백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10%를 차지하며 1위에 오른 지 오래다. 미국 1~7위 핸드백 브랜드는 모두 시몬느의 손을 거친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8054억원,
영업이익 1439억원을 올렸다. 제품 소매가로
환산하면 8조원어치다.
이런 시몬느를 박 회장은 “풀서비스
컴퍼니”라고 부른다. 주문한 대로 단순 제품만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와 달리 제품 개발과 기획, 생산 능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DKNY와는 32년째, 코치와는 22년째 거래를 이어갈 정도로 명품업체의 신망이 높다. 지난 36년간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은 20만 종이 넘는다.
박 회장은 1987년
자본금 1억원으로 시몬느를 창업했다.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봉제·잡화 제조업에 뛰어들어 30여 년 만에 ‘명품백 무대 뒤의 주인공’으로 키운 배경에는 장인들의 땀이 있다. 시몬느에는 환갑을 넘긴 장인만 열네 명이 근무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표 명품업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다. 박 회장은 “경력 55년의 업계 최장수 장인 등 본사 직원 400여 명의 경력을 모두
합치면 ‘6100년’이 된다”고 강조했다.
루이비통·셀린느·로에베…기획·생산 모두 시몬느가 한다
1999년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본사. 글로벌
럭셔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장 폴 비비에르 당시 사장이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지방시, 펜디
등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았다. 이탈리아 장인들의 수제 핸드백과 시몬느의 시제품을 섞어놓고 계열사
수장들에게 이탈리아산을 고르도록 했다. 블라인드테스트에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꼽힌 다섯 개 백 가운데 세 개가 시몬느 제품이었다.
“아시아 국가가 무슨 명품을 만드느냐”던 유럽 디자이너들의 콧대가 꺾인 순간이었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허명이 드러난 ‘파리의 심판’에 비견되는 핸드백판
‘루이비통의 심판’을 이끈 주인공은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다. 시몬느는 1999년 지방시, 셀린느, 로에베, 크리스찬라크르와 등 LVMH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했고 2000년대엔 마크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등이 핸드백 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제품 개발과 생산을 전담했다. 무명의 K패션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경기 의왕시 시몬느 본사에서 만난 박 회장의 눈빛에선 36년 전 핸드백 생산업체를 창업하던 당시의 결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변방의
청년이 글로벌 패션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갈망이 ‘K명품백’을
일군 씨앗이 됐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박 회장은
해외 출장이 잦은 중소 핸드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첫 출장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베네통 바지를 빨간색부터 흰색까지 색깔별로 모두 구입한 게 패션업에 눈을 돌린 시작이었다”며 “이후 가죽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제품을 제작하고 바이어와 협상해 수출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1987년 자본금 1억원으로 시몬느를 창업할 때 주변에선 “사양산업인 봉제업에 뛰어드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사양 기업이 있을 뿐 사양 산업은 없다”며 고급화와 완벽한 품질을 앞세워 새롭게 떠오르던 미국 명품 시장을 겨냥했다.
이후 36년간 뉴욕만 200번 넘게 방문했다. 3000번이 넘는 비즈니스미팅을 비롯해 글로벌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댄 횟수가 1만 회를 넘는다.
럭셔리업계의 문턱을 넘긴 쉽지 않았다. 1988년 뉴욕 DKNY 본사를 찾아가 “너희 제품 1%만 시몬느에 맡겨보라”고 큰소리쳐 핸드백 물량 240개를 맡은 게 돌파구가 됐다. 제품이 완판되자 주문 수량은 600개, 2400개 식으로 늘었다. DKNY는
생산 공장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옮겼고 코치, 토리버치 등도 시몬느를 찾았다.
시몬느는 연간 핸드백 2080만 개, 지갑 920만 개를 제작한다.
70조원 규모 세계 럭셔리 핸드백 시장(매출 기준)의 10%가량을 시몬느가 제작한 제품이 차지한다.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 미국에선 “TV에 나오는 명사 중 시몬느 백 없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다. 2003년 1440억원이던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전 1조원대로 커졌다.
시몬느는 어떻게 명품시장에 뿌리내렸을까. 박 회장은 비결로
세 가지를 꼽았다. △고객사의 서플라이체인을 대체한 플랫폼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장인정신 △고객사와의 협업 파트너십이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정도를 제외하면 90% 이상의 럭셔리 브랜드는 자체 서플라이체인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전문성·효율성을 갖춘 시몬느가 고객사를 대신해 핸드백 소재 및 제품
개발, 품질관리 등을 맡는다. 시몬느의 장인들은 손기술을
표준화했다. “가격 경쟁력은 중국보다 뛰어나고 품질은 압도적이어서 도저히 거래처를 바꿀 수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시몬느는 시몬느에프씨, 시몬느자산운용, 해피투게더하우스, SP자산운용 등 네 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시몬느에프씨는 해외 브랜드의 국내 유통과 자체 브랜드 0914의
영업·마케팅 등을 맡고 있다. 시몬느자산운용과 SP자산운용은 부동산 투자와 사모펀드(PE) 운용 사업을
하고 있다. 해피투게더하우스로 종합부동산업에도 진출했다(한국경제,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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