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경영 구본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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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6-28 09:2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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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애슐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와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LG화학 부장으로 입사해 LG그룹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지주회사 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계열사 포트폴리오 관리, 인재 유치, 임원인사 등 굵직한 그룹 차원의 경영을 챙겼다. 일찍이 LG그룹을 지주사체제로 바꿔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조용하지만 치밀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기회가 날 때마다 혁신을 통한 '1등 LG'를 강조했다.
구회장은 LG그룹이 화학, 전자, 통신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길 원했다. 고인이 눈을 돌린 분야가 바로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사업이다. 지난 2013년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얼마 전 1조 4440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기업인 ZKW를 인수하는 등 LG그룹의 전장 사업 규모를 확대했다. LG그룹이 자동차 전장사업과 에너지사업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한 것은 구본무의 '뚝심투자'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일상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소탈한 에피소드로 넘쳤다. 무조건 20분 전엔 약속 장소에 나가는 습관이 유명했다. 먼저 와 있는 구 회장을 보고 상대방이 황송해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음식점 종업원에겐 만원짜리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손에 쥐여주곤 했다. 골프장에 가면 직접 깃대를 잡고 공을 찾아다니며 캐디를 도와주었다. 아랫사람에게도 반말하는 법이 없었다. 옳은 일 한 의인(義人)이 나타나면 개인 재산을 털어 도와주었다. LG 의인상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소탈한 성격이지만 무엇이라도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해 틈만 나면 완벽을 강조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근성“이라는 좌우명을 지닐 정도로 승부욕도 강했다.
그는 유교적 가풍(家風)을 이어받은 경영자였다. 온화한 가부장 같은 리더십으로 직원들 마음을 샀다. 10년 전 금융 위기 때 그가 내린 지시가 화제였다.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 그는 눈앞의 이익보다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휴대폰 사업이 거액 적자 냈을 때도 LG전자는 감원없이 버텼다. 덕분에 그의 회장 취임 후엔 노사 분규가 거의 사라졌다. 직원들 애사심도 유별나다. 투박하지만 끈끈한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그는 평생 책을 딱 한 권 기획해 펴냈다. '한국의 새'라는 조류 도감이다. 그의 탐조(探鳥) 취미는 유명했다. 여의도 집무실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틈만 나면 한강변 철새들을 관찰했다. 새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것일까? 그는 바람에 순응해 하늘을 날듯 순리를 쫓는 삶의 방식으로 일관했다. 남과 다툴 일을 만들지 않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 흔한 비리나 구설수 한번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다.
기업인이 존경받지 못 하는 오늘, 정말 옆집 아저씨 같던 재계 총수를 떠나 보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낄 사람이 무척 많을 것 같다. 구본무 회장은 '정도경영'의 기치아래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사회에서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는 등 사회환원에도 꾸준히 힘썼다. LG복지재단은 2015년부터 ‘LG의인상’을 제정해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상을 주고있다.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자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2018년 6월에 ‘우리나라에서 존경할만한 부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구본무 회장이 11.1%로 1위를 차지하였다. 구본무 회장의 생전의 소탈한 성품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높은 도덕성 등이 뒤늦게 알려지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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