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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기업단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협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을 “목표로 하는 기회를 구체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정신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 뿐만 아니라 개인과 조직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기업가정신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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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6-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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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안 해도 내가 먹을 도시락은 내 손으로 만들었다. 유엔에서 일하고 싶어 17세에 울산을 떠나 홀로 미국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글로벌 기업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때도 그랬다. 화려한 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는 빵과 하몽 몇 조각, 과일 정도.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인생 최대의 행복을 놓치기 싫었다. 그때 깨달았다. 재료가 맛의 99%라는 것을. 그리고 상상했다. ‘아침마다 이런 신선한 식재료를 문앞에 배송해주면 좋을 텐데 ….’


국내 최초의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5년 더파머스를 창업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던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을 열었다. 마켓컬리 매출은 4년 만에 30억원에서 1560억원으로 늘었다. 회원 수는 200만 명을 넘었다. 투자도 1800억원이나 받았다. 유통 대기업들도 새벽배송을 따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해 스스로를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에 빗대 ‘티라노과(科)’라고 하는 김 대표를 서울 마장동의 고깃집 본앤브레드에서 만났다. 청바지에 운동화, 편안한 후드티 차림으로 한손에 커피 텀블러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맛없는 걸 먹는 것”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 한 가지

김 대표는 음식에 미친 사람이다. 휴가를 갈 때도 가고 싶은 레스토랑 예약에 성공하면 그때서야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잡았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20대를 보내며 길거리 음식점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 다녔다. 그는 “좋은 식재료를 골라 알리고 파는 지금의 일은 완전한 ‘덕업일치’(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라고 했다.


음식에 대한 열정은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의사 부부인 부모 대신 김 대표와 동생을 돌봐줬던 외할머니는 안동 음식의 대가였다. “인생에서 처음 기억나는 음식이 갓김치와 보리굴비예요. 네다섯 살 때쯤이었을 텐데, 아이들이 먹기는 어려운 음식이죠. 어릴 때부터 어른 입맛에 길들여졌습니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을 울산에서 보냈다. 그곳엔 고기로 유명한 봉계라는 동네가 있다. 외할머니가 봉계에서 사서 쪄주던 고기의 맛, ‘슴슴’했던 불고기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음식을 먹어보는 게 일인 그에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세상에서 이젠 못 먹는 게 딱 하나 있다”며 “그걸 먹고 싶다”고 답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경상도식으로 끓여준 ‘빨간 소고깃국’.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빨간 소고깃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 커지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과 농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 대표는 마켓컬리에서 파는 모든 상품을 먹어 본다. 직접 산지도 찾아간다. 좋은 소금을 찾기 위해 먹은 걸 다 게워내며 신안 앞바다를 헤맸다. 양계장과 과수 농가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사연이 없는 제품이 거의 없어요. 본앤브레드는 원래 1~2㎏씩 한우를 팔던 정육점이에요. 마켓컬리 초기에 1~2인분의 고기로 나눠 꼭 팔고 싶다고 여러 번 이곳을 찾아와 설득했고, 초기에 마켓컬리 정육 품질을 높여준 곳이에요.” 마켓컬리에 상품을 공급하는 농가와 제조사 대부분은 연 매출이 100억원 미만이다. 그는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마켓컬리는 ‘새벽배송’이라는 시간 싸움에서 이긴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경쟁력은 신선식품 유통 생태계와 콘텐츠를 갖췄다는 점이다.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을 전부 직접 매입한다. 도매상들을 거치며 떠안는 생산자들의 재고 부담 등을 줄여주고, 현금 지급을 더 빨리 해줄 수 있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마켓컬리 전용 상품도 30% 정도 있다. 다른 곳에서 생산하게 하고 일명 ‘라벨갈이’를 하는 식의 자체상표(PB) 상품은 없다. 우드앤브릭, 브레댄코 등 소규모 베이커리가 마켓컬리 채널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그들의 이름으로 판매한다.


전국 방방곡곡, 세계 여러 나라의 농축수산물 산지를 가본 그는 “사과농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과수원은 한 20년 해야 잘한다고 해요. 40~50년은 기본이고, 대를 이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스타트업이 단기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매일매일 조금씩 꼼수 안 쓰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 농부들에게서 그 성실함에서 오는 큰 결실들을 배웠죠.”


컬리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주목초우유는 문 닫기 직전의 제주 목장을 설득해 만들어낸 상품이다. 마켓컬리에서 아직 우유를 팔지 않던 2015년 7월 한 상품기획자(MD)가 “우리도 우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년이 걸렸다. MD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수십 개의 목장을 훑고 다녔다. 실제 제품이 나온 건 다음해 8월이다. 김 대표는 “식초 하나, 식빵 하나를 출시하려고 해도 꼼꼼하게 따지는 게 우리만의 방식이고 모든 MD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소개했다. 마켓컬리의 상품 소개 등을 쓰는 작가들도 MD와 함께 현장에 가보도록 한다. 철저한 공부는 마켓컬리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때다. 다른 업체들이 살충제 계란을 전량 회수할 때도 마켓컬리의 계란은 안전했다.


음식은 진화하는 스승이다

김 대표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매월 15일, 30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몇 안 되는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이 없었다. 대금 결제 날도 마찬가지였다. 상추 농사, 계란 농장을 꾸리는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 달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때도 확신이 있었다. 누구나 믿고 살 수 있는 식자재를 파는 이 사업은 분명히 잘될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사업 초창기 한 소비자가 “사과가 달지 않다”는 상품평을 남기자 직접 수화기를 든 적도 있다. “현지에서 맛보고 공급받은 사과인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먹다 남은 반쪽이라도 보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신뢰를 지키겠다는 절박함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요즘은 책임감에 대해 고민한다.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현재 직원은 200여 명. 몸집이 커질수록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승부는 여기서 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 품질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김 대표는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도 마켓컬리가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는 ‘이머전시(응급) 플랜’까지 짜놨다”며 “사업 첫날의 마켓컬리를 영원한 경쟁자로 삼으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200만 명의 회원이 모두 MD가 됐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컬리 러버스’라는 우수 회원들은 컬리에 입점했으면 하는 제품을 요청하고 리뷰까지 해줘요. 최근에는 충북 어떤 동네에서 처음 수확한 부추를 판매해달라고 부탁한 분도 있었어요.” 그는 소비자가 모두 스승이고, 그들과 함께 더 좋은 식재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 2019.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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