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길 애터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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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6-02 10:3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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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0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다
애터미는 국내에서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유통기업이다. 미국, 일본, 대만 등 해외 13개 국가에 진출해 지난해 유통기업으로 국내 최초로 7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신사옥을 마련한 박한길 애터미 회장은 진정한 ‘네트워크 마케팅’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대의 토종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인 애터미. 충남 공주시 서쪽 나지막한
산등성 숲에 새 보금자리가 오롯이 안겨 있었다. 페인트 냄새도 가시지 않은 5층짜리 새 건물에 들어서자 우선 커다란 강당이 눈에 들어왔다.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인 만큼 회원들을 위한 교육장이 필요할 터였다. 거기까지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홍보실 직원의 안내로 강당 오른쪽 계단을 두어 걸음 올랐을 때 2층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서둘러 계단에 내려섰다. 그중에 유달리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파란색
중절모를 쓰고 파란색 줄무늬 정장을 입은, 거기에 콧수염까지 기른 중년 신사가 범상치 않았다. 애터미의 수장 박한길 회장이었다.
어정쩡하게 계단에 서서 명함을 교환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현인을 모시기 위해 손님이 찾아오면 먹던 밥도 뱉고, 감던 머리는
움켜쥐고 뛰어나갔다던 주공(周公)의 ‘토포악발(吐哺握髮)’ 고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님을 맞는 그의 행동에서 뭔가 대접받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성의가 설령 계획된 의도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흔히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초심을 잃어버리는 일반적인 기업 회장들의 행동과 다른 ‘변치 않는 노력’이 스며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조원 매출’이 괜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 시작부터 다가왔다.
애터미는 대형 유통채널과 경쟁한다
박 회장은 우리 일행을 구내식당으로 이끌었다. 마침 신사옥 탐방의 날이라 구내식당은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들로 가득했다. 박 회장이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식판에 음식을 담으면서도 박 회장은 환호에 답례하느라 연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마치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 높은 트로트 가수가 팬들에게 답례하는 것 같았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점심식사를 마친 뒤 회사를 한번 둘러보고 싶었는데, 따로 말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박 회장이 성큼성큼 큰 걸음걸이로 손수 안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역시 여느 회장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박 회장이 직접 회사 소개에 나선 이유를 이내 알 것 같았다. 자랑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다. 아까 봤던 대강당은 여느 회사의 강당이 아니었다. 국제회의장처럼
동시통역 시설을 갖춘 부스가 5개나 설치돼 있었다. 게다가
널찍한 유아놀이방까지 갖추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대만, 러시아 등 13개국에 해외법인을 갖고 있는 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직원들 업무 공간을 둘러보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세계 최고 IT기업들의 뺨을 칠 만한 신개념 열린 공간이었다. 전산이나
재무 등 꼭 필요한 부서가 아니면 지정된 자리가 없었다. 커다란 사물함과 캐리어가 있을 뿐이었다. 대신 곳곳에 도저히 사무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있었다. 출근한 직원들은 사물함에 옷을 벗어놓고 노트북만 들고, 또는 무거운
가방이나 자료를 캐리어에 싣고 그날그날 ‘필’이 꽂히는 자리로
이동해 일을 하면 됐다. 곳곳에 있는 회의실 역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회의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 또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곳곳에 배치된 안마의자들은 그저 애피타이저
정도였다. 최신 운동기구들로 가득한 피트니스실과 머리를 다듬을 수 있는 미용실, 사방이 유리로 시원하게 트인 25m 실내 풀장까지 있었다. 근무시간에 이용하라고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퇴근 후 하라고 하면 하기 싫잖아요. 가족들, 친구들과
놀기도 바쁜데. 근무시간에 짬짬이 하면 되죠. 건강하면 일도
더 잘할 테니까.”
글쎄 옳은 말이긴 한데, 근무시간에 당당하게 수영복으로 갈아입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창문 쪽을 향해 뒷모습만 보이는 안마의자에서 사람 머리가 하나 슬그머니
올라왔다. 휴대폰을 보며 앉아 있던 직원이 회장을 알아보고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다시 의자에 파묻힌다. 박 회장의 말이 아주 빈말은 아니었다. 사람을 이처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기업이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다단계’ 회사와는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회장의 의도였겠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회사를 둘러본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회사보다 근무환경이 열 배는 좋은 것 같네요. 흔히 오픈형 사무실을 도입하고
있는 구글 같은 IT 기업들보다도 나은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의
니즈를 더 잘 반영했다고 할까요.
박한길: 새 사옥을 지을 때 콘셉트가 있었어요. 첫째는 소통, 둘째는 레포츠였죠. 저는 젊어서부터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을 하기 싫은 건 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잖아요. 뭘 할지,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 정해서 하면 일이 재미없을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일이 보일 때까지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며 보고 배우다
일이 눈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게 소통의 출발점 아니겠어요?
사무실에 놀이공간이 많은데 신입사원들이 놀기만 하면 어쩌죠?
박한길: 사무실에 놀이공간을 마련한 게 아니라, 놀이공간 안으로 사무실이 들어간 겁니다. 저는 차라리 직원들이 과로할까
봐 걱정되거든요. 일이 재미있는데 어떻게 멈춥니까? 당연히
과로로 이어지게 되지요. 제가 그랬거든요. 직원들이 과로하면
결국 회사에 손해가 되고 맙니다. 피로하면 창의성이 나올 수 없고 건강을 해치면 결국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니까요. 그래서 ‘운동하다 지치면 일이나 하자’는 식으로 방향을 정한 겁니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신 건 아니죠?
박한길: 17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스펙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사장은 안 시켜줄 것 같더라고요. 50대가 되면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 너무 늦을 것 같아 사표를 썼지요. 사표를
안 받아줘서 6개월 동안 실랑이를 했습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을 바로 시작하신 건가요?
박한길: 처음엔 인터넷 백화점을 했어요.
‘IMKOREA’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2000년에 오픈했습니다. IM은 인터넷 마트(Internet Mart)를 의미했죠. 알리바바나 아마존 같은 기업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거죠. 그때
한국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LG 이숍’이나 ‘한솔’ 정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주부들은 PC를 많이 쓰지 않았고 온라인 쇼핑은 그저 직장여성들만 이용할 때였어요.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어떻게 생긴 장바구니를 쓰는지 물어보는 질문도 있었죠. 3년을 버텼는데 결국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지 못했습니다.
너무 앞서갔군요.
박한길: 많이도 아니고 두 걸음 정도 앞선 겁니다. 그런데 그 두 걸음이 크더라고요. 사업은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반걸음
정도만 앞서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때 알리바바처럼 손정의 같은 큰손 투자자를 만났더라면 달랐겠지만….
망했습니까?
박한길: 쫄딱 망했죠. 신용불량자가
돼서 월셋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직원들 급여 정리하느라고 사채를 끌어다 썼는데 그것 때문에 2년여간 괴롭힘을 당했어요. 냉장고와 낡은 TV 빼고 남은 것이라곤 없었죠. 건강도 나빠져 간경화로 몸무게도 18kg이나 줄었습니다. 망한 뒤
4년 만에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조금 된다 싶을 때 사채업자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시 빚이 8000만원이었는데 이자는 못 줘도 원금은 갚겠다고 했죠. 사채업자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웬 떡이냐 싶었겠지요. 현금 2000만원을 먼저 갚고 매달 500만원씩 갚아나갔습니다. 사채업자에게 한 약속이 있었거든요. ‘그만 좀 괴롭혀라. 내가 건강이 좋아져서 다시 돈을 벌게 되면 당신 돈부터 먼저 갚겠다.’ 내가
한 말은 손해가 나도 지켜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거든요.
새로 시작한 사업이 네트워크 마케팅인가요?
박한길: 흔히 ‘다단계’라고 하는 거지요. 다단계 판매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아주 안 좋았는데
제가 책을 보고 공부를 해보니 이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거예요. 싸고 좋은 물건을 파는데, 광고를 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하면 광고비를 소개한 사람에게 주는 거잖아요. 문제될 게 없죠. 유통 마진과 광고비가 제품 가격의 70%까지 차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것 없이 35%를 수당으로 줘도 다른 회사보다 싸게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거잖아요. 경쟁력이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왜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거죠?
박한길: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원칙을 어기기 때문이죠. 다단계라고 해서 아까 말씀하신 물건만 파는 게 아닙니다. (회사를
둘러본 소감을 말하면서 ‘옥장판이나 자석요 같은 거 파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라고 말한 데 대한 박 회장의 반격이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다른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하고만 경쟁하는 게 아니죠. 네트워크 마케팅도 유통이고 그렇다면 다른 유통채널과
경쟁해야 하는 겁니다. 네트워크 마케팅 몰에서 창고형 할인매장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팔지 못할
이유가 뭐죠.
할인매장과 경쟁한다고요?
박한길: 애터미는 처음부터 같은 업종인 다단계 회사나 방문판매 업체와 경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시작했습니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등 다양한 유통기업과 품질, 가격으로 경쟁하죠. 그래서 우리가 모토로 정한 것이 ‘절대 품질, 절대 가격’입니다. 우리는 판매할 상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품질을 봅니다. 최고의
품질을 고른 다음 가격을 정하는 거죠. 같은 가격대라면 우리 제품보다 더 나은 제품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중명품전략’입니다. 가격은 대중적이면서 품질은 명품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말이 쉽지, 좋은 품질의 상품을 싼 가격에 팔기가 쉬운가요?
박한길: 정직하면 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정선상략(正善上略)이라는 게 있습니다. 정직과 선함이 최상의 전략이라는 뜻이죠. 흔히 정직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잘 보세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어렵게 삽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살아요.
그런가요?
박한길: 한때 여러 가전업체가 난립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품질이 떨어지고 애프터서비스도 잘 안 해주던
기업들은 다 망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제품에 책임을 진 업체들만 남았지요. 대기업이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기업들이 대기업이 된 겁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모두 제품을 정직하게 만들고 판매한 기업들입니다.
애터미도 그만큼 정직한 기업입니까?
박한길: 우리는 더합니다. 정직과
원칙에 목숨을 걸죠. ‘1품 1사’가 우리의 원칙입니다. 품목별로 한 회사 제품만 취급한다는 거죠. 협력사에 최대한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서지요. 납품 물건에 즉시
현금 결제하는 원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대신 협력사에 품질 관리를 절대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특히 최상의 신뢰를 요구해요. 무관용 원칙(No Tolerance Policy)이 있습니다. 양심을 속이는 기업이
있으면 단 한 번이라도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런 사례가 있나요?
박한길: 치실을 납품하는 업체가 있었어요. 상품에는
치실 길이가 50m라고 써 있는데 풀어서 재보니 4~5m씩
모자라는 거예요. 전화를 걸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을 못 해요. 그
자리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했죠.
한 회사 제품만 취급해도 최대이윤 보장은 어려울 텐데요.
박한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거죠. 우리나라
네트워크 마케팅에서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위를 하는 제품이 건강기능식품 ‘애터미 헤모힘’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식품생명공학연구팀이 국가 지원을 받아 2004년 개발한 제품이죠. 이
제품이 처음에 다른 업체를 통해 판매될 때 60포 한 세트 가격이
77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취급하면서 가격을 절반 아래로 낮추었어요. 이후 수량을 더 늘리면서 원가를 절감했고 지금은 60포 한 세트를 8만4000원에 판매합니다. 처음에
비하면 가격이 90% 가까이 떨어진 거죠.
네트워크 마케팅은 ‘빅 비즈니스’ 가능성 크다
성분을 바꾸거나 용량을 줄인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격이 그렇게 낮아질
수 있습니까?
박한길: 규모의 경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성분이나 용량은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런 장난을 쳤으면 매출 1위가 가능했을까요? 77만원일 때 헤모힘은 한 달에 500박스 팔렸습니다. 당연히 제조공장이 적자였겠죠. 생산라인을 한 번 돌릴 때 최소 물량이 3000박스인데 500박스 팔아서는
1년에 공장을 두 번밖에 못 돌리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처음에 계약을 맺을 때 한 달에 10만 박스씩 만들면 원가가 얼마 드는지 물었습니다. 그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한 거죠. 그러다 계속 생산물량이 늘었고, 당연히
원가는 떨어졌으며, 제품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된 겁니다. 지금 헤모힘은 한 달에 23만 박스를 팔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팔릴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셨죠?
박한길: 헤모힘은 개인기업에서는 실행하기 힘든 프로젝트였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국가 예산 50억원을 지원받아 8년이라는 장기간 연구 끝에 나온 제품이어서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죠. 직접
먹어보고 효과도 느꼈고요.
동물적 감각이네요.
박한길: 오랫동안 영업현장을 누볐으니까 그렇기도 했겠지만 철저하게 연구논문과
품질시험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는 거죠. 품질만 좋다면 원가혁신을 통해 가격을 낮추면 팔린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칫솔이 그랬어요. 칫솔모는 끝이 미세하더라도 날카롭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처리된 것을 사용해야 하거든요. 그런 걸 고르기 위해 이 제품 저 제품 시험하다 보니
잇몸이 상하기까지 했어요. 나중엔 손등으로 대신해야 할 정도였죠.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게 우리 칫솔이고, 이게 연간 3000만 개가
팔립니다.
매출 ‘1조원’ 신화가 처음엔 A4 용지 한 장에서 출발했다죠?
박한길: 하하, 처음엔 280만원짜리 중고 승합차 한 대 사서 혼자 물건을 팔러 다녔어요. 그러다
물량이 많아지니까 사업자등록을 해야 했지요. 사업자등록증을 얻으려면 사무실을 얻어야 했는데 사무실 임대에
필요한 2000만원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죠. 간신히 사무실을
마련했는데 남은 돈이 없어서 책상과 의자도 사무실에 버려진 것을 그대로 썼어요. 간판 달 돈도 없어서 A4 용지에 상호를 써서 테이프로 문에 붙였습니다. 그게 ‘애터미’의 시작이죠.
그러던 회사가 오늘날 공주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됐습니다.
박한길: 매출 규모로 보자면 제일 큰 기업이죠. 지방세가 올해는 50억원을 넘길 것 같아요. 작년에 42억5500만원을
냈는데. 공주시 재정이 적자였는데 (우리 덕분에) 흑자로 전환됐다고 해요. 첫해 지방세를 낼 때 시 재정의 20%였는데 지금은 5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신 건가요?
박한길: 아직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1위지요. 매출도 그렇지만 직원 연봉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주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일을 잘해서 연봉을 많이 주는 게 아니라, 연봉을 많이 주면 일을 잘하게 됩니다. 없어 보이던 능력도 생기고
무엇보다 열정이 생기게 되죠.
그러려면 보완 전략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박한길: 제가 늘 강조하는 것 중에 ‘대책
없는 오지랖’이란 게 있습니다. 부문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는 거죠. 예컨대 전산실 직원은 전산실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주 업무가 아니잖아요. 전 직원을 위한 그룹웨어, 회계,
웹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걸 잘하려면 다른 부서의 업무도 잘 알고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어떤 틀에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하는 거고요. 제가 추구하는 조직이 그런 아메바 조직입니다.
그것 역시 말보다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인데요.
박한길: 그런 수평적인 아메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무결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우리 회사엔 지급결의서가 없어요. 모든 직원이 상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해서 자금을 사용하면 됩니다. 월간 매출이 몇 십억이던 시절 영상팀에서 1억이 넘는 영상장비의 구매 건을 들고 내게 왔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나보다 당신이 방송장비를 잘 아는데 왜 내가 결정하나.
당신이 결정하면 내가 따르겠다.’ 사실 결제를 받는 건 책임을 상사에 전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거든요. 스스로 최종 결정을 하게 둔다면 오히려 더 고민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교육사업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박한길: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며 가르치는 시골 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서 땄는데, 지금
대안학교 이사장을 하면서 써먹고 있죠. ‘드리미스쿨’이라고
충남 병천에서 올 3월 개교했습니다. 학생 중에 비올라로
예고에 합격한 아이가 있습니다. 선생님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아이라 처음엔 받아야 할지 선생님들의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받자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평생 살아갈 수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우리의 목표니까요. 그런 학교를 100개쯤 세우는 게 저의 목표고요.
외국에도 애터미 학교가 있다면서요.
박한길: 후진국일수록 교육 문제가 절실하잖아요. 그래서 인도에서 교사 월급을 못 줘서 폐교된 학교를 인수했습니다. 최근
교사 11명과 학생 100명으로 다시 학교를 열었고요. 캄보디아에서는 소외계층이 다니는 학교에 빵과 우유를 공급하는 등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또 큰일을 하셨죠?
박한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것 말씀이군요.(웃음) 기부금 100억원
중 90%는 청년 한부모들을 돕는 데 쓰이도록 했습니다. 나머지 10%는 여성 취약계층을 도울 예정이고요. 따지고 보면 미혼모들은
소중한 생명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는 것이잖아요. 사회적 비난과 외면 속에서 청춘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공부할 기회와 일자리를 잃고, 생계 압박을 받는 그들의 고충을 좀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금 이름도 ‘생소맘(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맘) 펀드’로 했습니다.
대기업들이 독차지하던 직접판매협회 회장에 선출되셨죠.
박한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는 시기에 회장으로 선출돼 사실 어깨가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연결과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야말로 우리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직접판매원들이 초연결
사회의 인플루언서가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초연결 사회는 우리 판매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을 좀
더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겁니다. 이제 세계 시장은 개별 시장의 집합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시장, 글로벌 원마켓이 됐습니다. 아마존은 미국
회사, 알리바바는 중국 회사가 아니라 모두 하나의 글로벌 유통기업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직접판매 회원사들이 글로벌
원마켓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회원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도울 것입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의 미래가 그렇게 밝습니까?
박한길: 네트워크 마케팅이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들이 자신들은 특수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유통 채널들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수당을 받기
위해 물건을 사는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지요. 수당이 없더라도 물건이 싸고 좋아서 사도록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물건이 좋아서 사는데 게다가 수당까지 받으니 플러스 알파죠.
당연히 무한한 성장 잠재력이 있는 겁니다. 알리바바와 아마존 같은 플랫폼 사업의 약점을
잘 보완하면 도리어 커질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한 신념이 확실하시네요.
박한길: 저는 네트워크 마케팅이 그 어느 것보다 가치 있는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거창한 것 같지만 프랑스혁명을 생각해봅시다. 프랑스혁명 정신이
자유와 평등, 박애입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 자유와 평등
중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세계가 양분돼 냉전을 겪었습니다. 자유가 판정승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닙니다. 빈부격차, 양극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등 양쪽 모두 진정하게 승리하지 못한 것은 박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은 이 박애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출발은
돈이 많건 적건, 교육을 많이 받았든 덜 받았든 모두 평등합니다. 기회의
평등인 것입니다. 노력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성공하려면 나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후원하는 회원을 성공시켜야만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애입니다(중앙시사 매거진,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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