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손님 안받아도 살 수 있다…‘다크 이코노미’ 전략을 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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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02 20:0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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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스포츠·아웃도어 용품 판매업체인 ‘아카데미 스포츠앤아웃도어’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가 닥치자 250여 개 매장의 문을 닫아야 했다. 매출이 급감하면서 매장을 유지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었다. 위기에 몰린 이 회사가 찾은 대안은 매장을 창고처럼 바꾸고, 구매는 인터넷으로만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매장 앞 주차장은 ‘픽업 센터’로 바꿨다. 고객은
더는 매장에서 직접 신발이나 옷을 고를 수 없었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매장 주차장에서 물건을
받아야 했다.
고육지책(苦肉之策)은 뜻밖의 ‘대박’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분기 이 회사의 매출은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20%가 늘어난 13억5000만달러에
달했고, 순이익은 100% 늘어난 6억달러였다. 매장 운영을 위한 유지·관리비가 줄어들면서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써보고
입어봐야 만족할 줄만 알았던 고객들은 빠르고 간편한 인터넷 쇼핑의 장점에 빠르게 적응했다. 신종 코로나를
피해 집에서 운동하는 ‘홈트레이닝’ 수요가 폭발한 것도 도움이
됐다. 순식간에 ‘코로나 피해 기업’에서 ‘수혜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스타트업 ‘리프 테크놀로지’ 역시 비슷한 역전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원래 도심 지역의 주차장 관리를 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의 외출이 끊어지면서 비어가는 주차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찾은 돌파구는 텅 빈
주차장에 주방 설비가 탑재된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배달 전문 식당을 입주시킨 것이었다. 외출이 줄고
음식 배달이 크게 늘어나는 변화에 적응한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 안에는 최대 5개 식당이 동시에 일할 수 있다. 이 회사는 현재 100여 곳 주차장에서 공유 주방을 운영 중이고, 올해 안에 40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작년 말에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7억달러(약 7600억원)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유통업과 동네 상권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많은 소매점과 식당, 학원 등이 문을 닫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고파는 행위가 없어진
건 아니다. 전자상거래와 배달 인프라를 활용해 기존 매장이나 홀의 불을 끈 채, 최소한의 인력과 투자로 운영되는 이른바 ‘다크 스토어(dark store)’와 ‘다크 키친(dark kitchen)’이 파괴된 기존 상권의 빈자리를 메우며 급성장하고 있다. 각각 매장 없이 창고만 있는 소매점, 주방만 있는 식당인 셈이다. 이 모델이 점점 다른 영역으로 확산해 가면서, 이른바 ‘다크 이코노미(dark economy)’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양식이
자리잡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 꺼진 백화점에서 ‘온라인 쇼핑’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은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백화점이 쇼핑객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공간 배치와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는지를 상세히 묘사한다. 매장 내에서 ‘고객의 쇼핑 경험’을
끌어올려,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백화점의 마케팅 방식이다. 그러나 ‘다크 이코노미’의 트렌드는 백화점의 비즈니스 모델마저 뒤바꾸고 있다.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Macy’s)는 지난해 10월 미국 델라웨어주와 콜로라도주의 백화점을 다크 스토어로 전환했다. 일명 ‘픽업 및 온라인 주문 처리 센터’다. 코로나 사태로 개점 휴업 상태인 백화점을 통째로 물류 창고로 바꿔, 인터넷 주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했다. 백화점은 애초에 입지가 좋은 도심에 짓는다. 소비자와 가까운 데서 배송이 출발하면, 더 빠르게 전할 수 있다. 덕분에 메이시스의 ‘온라인 구매 후 매장 앞 픽업’ 매출은 작년 3분기 전체 매출의 30%까지 급증했다.
고급 식료품 매장으로 유명한 아마존의 홀푸즈마켓도
지난해 9월 뉴욕 브루클린에 다크 스토어를 열었다. 홀푸즈마켓의
상징 같은 샐러드 바나 계산대가 없고, 아예 매장 내에 손님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직 온라인 주문만 받아 배송한다. 신종 코로나 이후 매장 방문보다
온라인으로 신선 식품을 주문하는 수요가 3배 이상 급등하자, 기존
형식의 매장이 아닌 다크 스토어로 출점(出店)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식품 신선도를 지키며 배송하려면 도심 내
다크 스토어가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크 스토어는 부동산·물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준다. 미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은 작년 3분기 16억달러(약 1조7400억원)어치의 온라인 주문을 받았는데, 백화점 매장에 쌓여 있던 재고를 배송한
덕분에 새 창고나 물류 센터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대형마트 월마트와 타깃, 나이키 등도 조만간 비슷한 방식으로 매장을 전환할 계획이다.
노는 주방에서 배달 음식을 만든다
홀에 손님이 사라진 음식점들은 속속 다크 키친으로
전환 중이다. 미국의 햄버거 체인 ‘팻 버거’는 로스앤젤레스(LA)의 매장 15곳을 ‘다크 키친’으로 전환하고, 주방을
넓혀 자매 브랜드인 ‘허리케인 그릴&윙즈’의 주방을 들여왔다. 허리케인 그릴은 LA에 정식 레스토랑 한 곳 없이 팻 버거 매장을 이용해 이 지역의 치킨 배달 사업을 장악해 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레스토랑 그룹 ‘하이 네이버(Hi
Neighbor)’는 코로나로 문을 닫은 기존 식당 1곳의 주방 설비를 활용해 배달 전문
식당 3곳과 테이크아웃 칵테일바 1곳을 열었다. 이 중엔 한식당 ‘전주(Junju)’도
있다. 갈비찜이나 불고기 덮밥을 시키면서 칵테일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 요리장들에겐 일할 공간이, 소비자 입장에선 저녁거리 선택지가 늘었다.
다크 키친 역시 다크 스토어처럼 비용을 절감하고, 온라인 매출을 늘리는 데 최적화했다. 우선 매장 임대료와 주방 설비, 인테리어 비용 등 ‘고정비’가 크게 줄어든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머슬 메이커 그릴’의 마이클 로퍼 CEO(최고경영자)는 “도심에
식당을 열려면 임대료, 주방 설비, 인테리어, 서빙 인력 고용 등에 최소 35만달러(약 3억8000만원)를 써야 하는데, 다크 키친으로 열면 7만5000달러(약 8000만원)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유 사무실처럼 큰 주방 하나를 여러 업체가 나눠 쓰는 공유 주방도 다크 키친의 한 형태로 각광받고 있다. 두바이 ‘키토피’는 중동
전역 식당 100여 곳과 계약을 맺고 이 식당들의 레시피로 음식을 조리해 소비자에게 배달한다. 인도의 공유 주방 ‘리벨 푸드’는
인도 전역 35개 도시에서 3000여 개 식당 점포를 입주시켰다.
가속도 붙은 다크 이코노미
다크 스토어와 다크 키친 등 다크 이코노미의 모델은 신종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확산하고
있었다. 인터넷 쇼핑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점원과 대면해 상품 정보를 얻고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인터넷상의
제품 정보나 후기에 의존해 주문하고, 제품을 배송받는 방식을 더 편리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면 소통의 부담을 회피하고,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받는 편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일반 매장 매출은 점점 떨어지고, 온라인 매출이 이를 상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이러한 변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다크 스토어
등을 통해 이뤄지는 온라인 장보기 시장 규모가 지난해 2715억달러(약 295조원)에서 2024년에는 6633억달러(약 720조원)로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크 키친도 연평균 12%씩 성장, 오는 2027년엔 714억달러(약 78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다크 이코노미의 현상은 유통과 외식업을 넘어 영역을 넓혀간다. 영국 극단 ‘다크필드’는
지난해 극장에 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오디오 체험극 ‘더블’을
선보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티켓을 구매하고, 개막 시간에
맞춰 집에서 앱을 켜면 헤드폰을 통해 360도 입체음향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실제 극장은 텅 비었지만, 관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공연 현장을 느낀다. 이른바 ‘다크 시어터(dark
theatre)’다.
그러나 부작용 우려도 크다. 미국 비영리단체 ‘레스토랑
근로자 협회’는 최근 “다크 스토어와 다크 키친이 늘면서
서비스 인력의 일자리 불안정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경쟁의
판이 커진 것도 문제다. LA에서 다크 키친을 운영하는 에릭 그린스펀은 “지역 상권에서는 많아 봐야 수십개 식당이 경쟁하지만 배달 음식 시장에선 수백~수천개
식당과 경쟁한다”며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된다”고 했다(한국경제,
202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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