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의 '박세리 모멘트' 앞당길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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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07 17:1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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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국내 평정 뒤 해외 진출, 추신수 조기 진출 해외서 실력
실리콘밸리 진출 때 세 가지 꼭 따져봐야 ①왜 ②언제 ③어떻게
최근 유망주 속속 등장… 한국 스타트업 '박세리
모멘트' 곧 온다.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투자를 하면서 한국에서 온 창업가·벤처 투자자·정부 관계자를 많이 만났다. 매번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은 '왜 한국 스타트업은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않나'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등이다. 이럴 때 야구 얘기를 꺼낸다. 실리콘밸리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홈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이다.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은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다. 류현진, 추신수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 모두 메이저리그 올스타지만 걸어온 길은 확연히 다르다. 류현진은 한화 이글스에서 7년간 뛰면서 신인상·MVP 등을 휩쓴 뒤 미국으로 건너왔다. 바로 LA 다저스 선발투수로 발탁돼 7년 만에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투수가 됐다. 반면 추신수는 부산고 졸업 후 한국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시작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클리블랜드, 신시내티를 거쳐 작년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됐다. 한국을 장악하고 온 류현진, 일찌감치 조기 유학 온 추신수. 길은 달랐지만 둘 모두 올스타가 됐다. 한국 창업자(야구 선수)가 실리콘밸리(메이저리그)에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올스타)이 되는 길도 비슷하다.
지난 20년간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을 만났다. 연간 50개 업체를 만났으니 거의 1000곳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미국에서 제대로 성공한 업체는 없다. 수백 타수 무안타의 참담한 타율이다.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워낙 건강해 외국 스타트업이 빈틈을 파고들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좋은 인력과 자본이 필수다. 그런데 인재는 미국의 좋은 스타트업을 놔두고 굳이 외국 스타트업에 합류하지 않는다. 벤처 투자자들도 본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배경도 잘 모르는 외국 스타트업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 좋은 사람, 자본 없이 외국에서 어웨이 경기를 하면 승산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면 세 가지를 꼭 따져봐야 한다. 왜(why), 언제(when), 어떻게(how)다. 우선 왜 진출해야 하는지,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로컬(local) 검색이나 서비스, 전자상거래, 결제 같은 내수 지향적 사업은 류현진처럼 국내 시장을 먼저 장악해야 한다. 한국을 장악하면 해외 자본이 제 발로 찾아온다. 다만 해외 부품 조달·생산이 필요한 하드웨어 업종이나 앱·설루션처럼 초기부터 글로벌 진출이 필요한 비즈니스는 추신수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많은 업체는 해외 시장 선점에 욕심을 낸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조사, 탄탄한 고객, 현지 인재 확보 역량 없이 오면 돈·시간 낭비일 뿐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주전도 아닌 연습생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것 같은 무모한 짓이다. 한 스타트업은 너무 일찍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6개월 이상 시간과 돈만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국내에서 자리를 잡아 해외 진출을 노려볼 만한 상황이 됐는데 초기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까웠다.
탄탄한 전략은 필수다. 내가 대학생 때 밤새워 했던 코에이(Koei)사 삼국지 게임의 '삼국 통일' 전략은 간단하다. 우선 자기 성에서 식량·군사를 충분히 키우고 주변의 가장 약한 성에 쳐들어가 자원을 뺏는 것이다. 그렇게 차츰 힘을 불려 삼국을 통일한다. 지금이 기회라며 자신의 역량, 경쟁 상황은 따지지도 않고 가장 강한 성에 쳐들어가면 패퇴(敗退)할 뿐이다. 게임 할 때는 당연한 논리를 비즈니스 할 때는 왜 생각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제갈량처럼 경험·지략을 갖춘 국내외 기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두자 많은 선수가 뒤따라 진출해 세계 여자 골프계를 점령했다. 한국 스타트업도 첫 글로벌 성공 사례가 나오면 많은 기업이 뒤따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류현진처럼 한국 시장을 정복하고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주문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이나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토스', 추신수처럼 조기 유학을 통해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헬스케어 앱 업체 '눔(Noom)'이나 채팅 설루션 업체 '센드버드(Sendbird)' 등 유망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스타 선정은 시간문제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박세리 모멘트(moment)'는 곧 온다(조선일보, 201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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