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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기업단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협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을 “목표로 하는 기회를 구체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정신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 뿐만 아니라 개인과 조직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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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AI센터에 500억 기부,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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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3-15 17:56 조회1,0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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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90) 대덕전자 회장은 한국 전자 산업의 산증인이다. 1965년 회사를 설립해 흑백 TV, PC,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인쇄 회로 기판을 생산했다. 김 회장이 세운 대덕전자는 지난해 매출 9600억원에 직원 2300명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18일 'AI(인공지능) 센터' 신축에 써달라며 예금 등 사재(私財) 500억원을 서울대 공과대학에 기부했다. 김 회장이 서울대에 기부한 금액을 합치면 657억원으로 서울대 개인 기부자 중 최고액이다. 김 회장은 노환으로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다. 17일 병원에서 만난 김 회장은 "4차산업 시대에 하드웨어 개념은 사라졌고, 모든 공학 분야에 소프트웨어를 접목해야 한다"며 "4차산업을 따라가야 하는데 대학이 그대로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김 회장은 "조선일보 신년 기획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올 1월 1일 자에 실린 '질주하는 세계―대학'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편이다. MIT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들여 AI를 가르치고 다른 학문과 융합하는 'AI 단과대'를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김 회장은 다음 날 회사 기획실에 "MIT의 AI 대학 사업을 정리해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자료를 검토한 후 AI 연구 시설을 짓겠다는 서울대 공대 차국헌 학장에게 연락해 500억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김 회장은 "나 스스로 확신하지 않았다면 1억원 정도만 내지, 그 이상은 협조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 아들인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은 "50년간 전자 산업을 경험하신 아버지는 '우리 산업이 추격형이 아니라 선도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변곡점'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며 "그 도전을 뚫고 갈 인재, 교육이 필요하다며 '학교에 숙제를 내신다'고 하셨다"고 했다.


김 회장은 1948년 서울대 전기통신공학과(현 전기•정보공학부)에 입학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휴학하고 호텔 웨이터로 일했다. 대학 재학 중 6•25전쟁이 터져 공군 통신장교로도 복무했다. 군(軍) 전역 후 학업을 마치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91년에는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해 이공계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전국 대학 20곳의 공대 도서관을 짓는 데 328억원을 후원했다.


―왜 AI(인공지능)센터인가?

"우리 회사 주력 상품인 PCB(printed circuit board•인쇄회로기판)는 기술 변화에 민감하다. 흑백 TV에서 시작해 지금은 스마트폰에도 들어간다. 상품이나 시장이 바뀌면 그 변화를 재빨리 따라가야 했기에 50년간 시장의 변화를 제일 먼저 읽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AI를 핵심으로 한 4차 산업이 우리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가 예전 그대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4차산업 핵심은 AI인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AI 연구 시설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아, 이거다!' 싶었다. 우리 회사가 하드웨어 부품을 생산하지만 이제 이름만 하드웨어지, 하드웨어 개념은 사라졌다. 모든 분야에 소프트웨어를 접목해야 한다. 때마침 서울대 공대에서도 'AI 센터를 짓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나이도 있고 이제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서 뭔가 해보자는 생각에 기부를 결정했다."


아들 김영재 사장이 거들었다. "1월 1일 조선일보에 실린 미국 MIT의 AI 단과대 설립 기사를 보시고 저를 부르셨어요. '다른 나라는 이렇게 앞서가는데 퇴원 후로 미룰 일이 아니다'라며 병실에서 AI 센터 기부를 결정하셨죠."


김 사장은 "아버지는 평소 일본 경제신문과 공학 잡지도 챙겨 보시는데 '우리 전자 산업이 갈 데까지 갔다. 남의 것 모방하는 건 안 된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했다. 듣고 있던 김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게 공부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열아홉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와 어린 여동생 셋뿐이었다. 대학 휴학하고 호텔 웨이터로 일했다. 이웃에 살던 조선호텔 지배인을 찾아가 사연을 말했더니 일자리를 줬다. 전쟁이 나던 해에는 주변 도움으로 간신히 학비를 냈다. 그래서 대학 입학은 6회로 했는데, 졸업은 12회랑 같이 했다."


김 회장은 동생을 두고 입대한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예전부터 이공계 분야에 기부하셨다.

"6•25전쟁이 나자 대학교수님,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군에 동원됐다.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고 대구에 있는 부대에서 통신장교로 복무했다. 그때 기술에 눈을 떴다. 전역 후 나는 사업을 시작했고, 동문들은 학자가 됐다. '사업을 하는 네가 학회 활동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 학회 운영비를 지원했다. 금리가 높던 시절이라 재단을 만들어 꾸준히 후원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재단 이름을 '해동과학문화재단'으로 정했다. 해동(海東)은 김 회장 아버지의 호(號)다. 아버지는 빚을 얻어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 게 탈이 나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김 회장은 "재단 이름을 정하려니 '해동'이라는 단어가 그냥 떠올랐다"고 했다.


―기부 기준이 있나?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에서 '기브'만 본다. 단, 기부받은 곳이 잘 활용하는지는 꼼꼼히 챙긴다. (내 후원으로) 전국 공대에 들어선 해동도서관을 찾아 직접 살펴보곤 했다."


―앞으로 계획은?

"나는 교수들도 PCB가 뭔지 모르는 진공관 시대부터 우리나라 전자 산업 발전을 다 지켜봤다. 앞으로 미래가 어떨지 내가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더 늦지 않게 (AI 센터에 기부) 결정 내린 건 타이밍이 좋다고 본다. 기부로 짓는 건물은 (나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짓는 게 절대 아니다. 지금 세계는 AI로 급변하는데 (서울대가) 잘 활용해주길 바란다" (조선일보,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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